처음 편집자로 입사했을 때 사장님은 인쇄소 견학을 시켜주셨다. 커다란 기계와 종이가 가득한 인쇄소의 모습은 정말 별천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는 물건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직접 그 광경을 보니 가슴이 두근대고 눈빛은 반짝였다. 4년 정도만에 다시 인쇄소를 찾았다.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때보다는 아주 조금 더 인쇄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되었다. 다행이다. 조금이나마 아는 게 늘어서.
다음 설명은 내가 이해한 선에서 풀어썼기 때문에 인쇄 과정을 굉장히 거칠게 서술한 것이라는 점을 주의하자.
인쇄소에 최종 PDF를 넘기면 RIP(Raster Image Processing)이라는 변환 과정을 거친다. 예전에 PDF로 넘겼는데 폰트가 깨지는 경우가 생긴다고 해서 의아했던 적이 있다. PDF는 이미지로 통합한 파일인데 왜 인쇄소에서 폰트가 필요한 걸까? 디지털이 아니라 오프셋 인쇄이기 때문에 인쇄기에 걸 판을 만들 때 디지털 데이터를 아날로그 데이터로 만드는 과정에서 폰트가 깨지거나 변환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게 많이 걱정되는 폰트를 쓸 경우에는 아예 명함 만들 때처럼 본문 텍스트 전체를 아웃라인 적용해서 PDF를 만들기도 한다고. 근데 이러면 또 부작용 우려도 있어서 무조권 권장되진 않는 듯하다.)
출력실에서 이렇게 RIP 과정을 거쳐 인쇄용 PDF를 만들어 출판사에 확인을 요청한다. 이때 최종적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니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지만 가장 지쳐있는 시점이라 긴장이 풀어질 때가 많다. ㅠ_ㅠ). OK가 나면 다음 단계로.
CMYK 네 가지 색 성분별로 분판하고 흑과 백의 망점 정보로 분해하여 기록한다. 이것을 필름에 현상하거나 CTP 판에 빛을 쬐서 인쇄 판을 만든다(소부라고도 한다). 요즘에는 필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판을 뽑는다. 판에 빛을 쬐서 아주 미세한 요철로 인쇄 형태를 기록한다.
파란색 판에 인쇄할 영역이 기록되면서 색이 변한다. 설명을 들어도 신기한 빛쬐기의 원리.
이렇게 만들어진 판을 인쇄기에 끼우고 본격 인쇄를 시작한다. 본문을 인쇄하는 기계들의 속도는 정말 빠르다. 빨라!
이렇게 출력된 전지들을 기계로 접는다. 아래 기계가 너무 빨라서 알 수 없는 영상이 되었지만...; 자동으로 반절 접고, 반절 접어서 본문 접지를 만든다.
인쇄된 전지들이 페이지별로 접히는 과정. 다 접히면 순서대로 쌓아놓고 기계로 한 묶음씩 빼서 한 권의 본문으로 합친다. 1~16쪽까지 묶음+17~32쪽까지 묶음+... 이렇게 합치는 과정.
이것이 접지를 한 상태로 전달되는 가제본. 한 묶음이 인쇄기에 한번에 들어가는 전지라는.
그리고 표지를 인쇄하는 과정은 따로 진행된다. C, M, Y, K 각각 잉크와 판을 맞게 넣고 인쇄한다. 컬러를 찍는 인쇄의 원리는 봐도 봐도 신기하여라.
기계에 사륙전지가 통째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미리 지업사에 말해서 반절로 자른 사륙반절에 표지가 3벌 앉혀져 있다. 여기에서 표지 감리를 한다. 미리 인쇄했던 시안과 비교하면서 색을 본다. (하지만 역시 디자이너가 아닌 나의 눈은 믿을 게 못된다. 색이 다르게 나와도 잘 몰랐음.) 하면서 뭔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담당 기장님에게 요청을 한다. 대신 인쇄용어를 써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마젠타 색을 좀 한 두 단계 올려달라든지 잉크가 너무 많은 것 같다든지? 인쇄의 원리를 더욱 공부하고 가야 기장님과 소통하기 쉬울 듯하다.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버려지는 종이가 있기 때문에 여분 종이가 필요하다.
접히고 잘린 본문들이 드디어 표지를 만나는 순간. 책등에 풀을 묻히고 아래 펼쳐져 있는 표지에 살포시 내려 앉는다.
자일리톨 같이 생긴 풀. 인쇄소마다 다르겠지만 풀이 한 종류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풀을 여러 가지 쓰는 것은 더욱 단단한 제본을 위한 노하우가 아닐까나.
표지를 씌운 다음에는 본문의 필요없는 부분을 잘라내는데 이 모습도 예술이다. 날개를 쫙 펼친 다음 본문만 쌱~ 날린다. 뒷부분에는 주걱 같은 것으로 표지를 쏵! 쏵! 접는 모습도 나온다.
책들이 컨베이어 벨트 타는 모습. 이것이 대량생산이닷!
요건 띠지 두르는 과정. 신기신기. 기계가 못하는 게 없넹.
동영상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인쇄소는 정말 시끄럽다. 그냥 시끄러운 게 아니라 정말 시끄럽다. 그리고 인쇄소라 잉크 냄새와 기계 냄새도 나고 분진 때문에 목도 칼칼해진다. 견학하는 몇 분간도 힘들었는데 저 환경에서 책을 만드시는 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책을 만드는 일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편집 후, 책의 물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지금보다 인정받으면 좋으련만.
인쇄소/제본소가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책도 없다.
견학 가이드 : 김경호 이사님(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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