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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 출판 일지

종이 쇼핑 1 - 이 종이가 내 종이냐?

책의 물리적인 주재료! 종이 쇼핑을 마쳤다. 우하하-

종이면 종이지 뭐 고를 게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옷, 신발 고르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어려웠다면 믿을까? 책에 필요한 종이는 총 3종류! 표지, 면지, 본문 종이다. (추가로 띠지 종이, 하드커버일 경우 겉커버 종이도 필요할 수 있겠다.)


표지 아르떼 내추럴 210g

표지를 고를 때는 별 고민을 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 많이 쓰던 표지 종이가 '랑데뷰'라는 종이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표지 종이로 많이 쓰이는 종이이기도 하다. 이번 표지가 딱히 질감을 표현하거나 특별한 색감이 필요한 디자인이 아니기 때문에 무난하게 랑데뷰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지업사에 견적을 받아 보니 약간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아르떼'라는 종이를 추천해주셔서 아르떼를 쓰기로 했다. 왠만하면 그냥 랑데뷰를 쓰려고 했는데 지업사 부장님께서 본인을 믿고 써보라고 하셔서 아르떼로 마음이 기울었다. 표지 시안 출력할 때 소다미디어에서 종이를 선택할 수 있는데 랑데뷰와 아르떼로 둘 다 뽑아 보았다. 확실히 내 (무지렁이) 감각으로는 크게 차이점을 느낄 수 없어서 아르떼로 결정! 쾅쾅쾅!


내추럴은 종이의 색상이 약간 미색이다. 같은 랑데뷰나 아르떼 종이라도 '울트라화이트' 또는 '백색'이 뒤에 붙은 종이는 좀 더 하얗다. 210g은 종이의 평량을 뜻하는데, 쉽게 이해하자면 두께라고 생각하면 된다. (깊게 들어가면 너무 어려워!)



면지 한솔 매직칼라 뉴밤색 120g

면지는 책의 앞뒤에 (보통) 2장씩 들어가는 색상지를 말한다. 기능상의 이유는 책의 제본을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색상으로 나오는 한솔 매직칼라와 삼화 밍크지를 많이 사용한다. 샘플책이 있으면 고르기가 쉬운데 당장 볼 수가 없어서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실제와 다르겠지만 참고할 만하다. 




저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대로 '뉴밤색'을 선택했다. 핑크&초코, 미란다의 살짝 촌스러운 감성과 맞닿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색상지는 신기하게도 칼라별로 가격이 다르다고 한다. 생산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등급이 나뉘어져 있고 그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면지는 120g이다. 본문보다는 살짝 도톰한 두께.


본문 종이 그린라이트 80g

고민을 가장 많이 한 게 바로 본문 종이이다. 사실 가장 무난한 선택은 '모조지'라고 단행복 서적에 아주 흔하게 쓰이는 종이다. 모조지에도 백색과 미색이 있는데 에세이나 소설류에는 미색이 많이 쓰이는 듯하다. 생산량이 많아서인지 다른 종이에 비해 가격도 낮은 편이다.

예전부터 책을 만든다면 재생지를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요즘에는 그래도 재생지를 사용한 책이 꽤 눈에 띄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재생지로 책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책 본문으로 사용할 만한 재생지를 구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8년에 더불어책공장 출판사 사장님이 쓴 '재생지 사용 고군분투기'는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물론 더불어책공장의 사례는 고지율 100%의 종이를 찾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고지율: 재생지 사용 비율) 동물 관련 도서 출판사에 걸맞게 환경보호라는 가치관을 직접 실천해서 책을 만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책은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만져보고 싶은 종이... ㅋㅋ)


그동안 재생지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1. 국내에는 재생지 종류가 거의 없고 구하기 어렵다. 종이회사에서도 반기지 않음.

2. 인쇄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작업이 번거롭다. 인쇄소에서도 반기지 않음.

3. 가격이 기존 종이보다 비싼 편이다. 출판사에서도 반기지 않음.

4. 변색이 될 수 있고 보관이 까다로우며 질감이 좋지 않다. 독자도 반기지 않음.


이렇게 여러 콤보로 악순환이 되다가 2009년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주관으로 <숲을 살리는 녹색 출판>이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는데 잠깐 진행하나 싶더니 몇 년새에 쑥 들어간 사업이 되었다. (재생지 지원 사업이 2년 만인가 중단되더니 재생지 마크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정작 녹색출판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만든 홍보책자도 표지는 친환경 종이를 사용하지 못했었다고 하니 작은 출판사에서 쉽게 재생지를 서서 책을 만들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수밖에... 2010년 이숲 출판사는 『해방촌 고양이』라는 책의 케이스를 갱판지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책에 잘 어울리는 제작물을 선보인 적이 있다. 역시 이 경우에도 만드는 과정이 험난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종이 많이 쓰이는 곳 하면 출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통계를 보면 공공부분, 금융에서 사용하는 종이량이 월등히 높다. (출판 용도에는 전체 사용량의 24%) 혹시 재생복사지에 관심이 있다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캠페인 페이지인 '숲을 살리는 재생종이'를 참고하자. 



신념과 현실 사이에 이렇게 아득한 거리가 있음을 재생종이 출판을 알아보며 정말 절절하게 느낀다. 요즘에는 (고지율이 20%밖에 안 되긴 하지만) 본문으로 쓸 만한 종이가 나와서 다행이다. 아마 위에 든 예처럼 신념 있는 출판사들의 수요가 조금씩 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린라이트를 쓰면 백상지보다 볼륨감이 더 있으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줄 수 있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 가장자리(전문용어 가생이)의 색이 조금 변질될 수 있다고 한다. (근데 오래된 책의 매력이 변색 아니겠어요?) 만약 깨끗하고 고급진 느낌을 주려면 재생지보다는 고운 느낌의 종이를 쓰는 게 맞을텐데, 내가 만드는 책이 세련된 컨셉은 아니기 때문에 그린라이트의 볼륨감과 가벼운 무게쪽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재생지라고 해서 그린라이트가 싼 편이 아니라는 게 함정.)


집에 있는 책을 이리저리 펼쳐보며 재생종이를 쓰면 책이 어떤 모양새로 나올지 감을 잡기도 했다.



보통 책 뒤표지에 이렇게 재생종이 마크가 있다. (공식 마크는 아니지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인가 보다.)




이 책은 북노마드에서 나오는 인문무크지인데 마침 내가 쓰려고 하는 그린라이트 80g을 사용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요렇게 친절하게도 판권면에 어떤 종이를 썼는지 명시해놨다.

덕분에 마음을 결정하기가 수월했다.


자, 이제 종이를 골랐으니 주문을 하면 된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거대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책을 만드는 데 종이를 얼만큼 구매할 것인가?

요건 다음 포스팅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산 너머 산이여...) 


책 제작과 종이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책 만드는 11가지 이야기

저자
홍동원 지음
출판사
글씨미디어 | 2014-02-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새삼스럽게 종이책의 종말을 거론하기도 쑥스러운 상황이다. 대한출...
가격비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책인데 책의 만듦새와 쓰인 종이와 제작 방식등을 세세히 소개한 책이다.

책에 쓰인 종이 질감이 흔하게 만지지 못했던 느낌이라 신기했다. 제작 과정이 궁금한 책이다.


그때 찍었던 사진을 뒤적거렸는데 내부를 찍은 사진이 없다! (-_-;)

알라딘에서 미리보기로 조금 볼 수 있다.




사용된 종이가 써 있는 판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