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덕의 자산(!)인 책들의 보금자리를 고르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신중해졌다. 특히 창고를 한번 정한 뒤 책이 많이 쌓이면 옮기는 일이 매우 큰 일이 되기 때문에 처음 잘 선택하는 게 좋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창고 역시, 자신에게 잘 맞는 조건을 우선순위로 정리한 뒤 그에 잘 맞는 곳을 선택하는 게 맞는 듯하다.
내게 필요한 조건을 정리해보았다.
1. 한동안 기본 수량이 많지 않으므로 고정비가 높지 않을 수록 좋다.
2. 규모가 큰 곳보다는 1인 출판사에도 신경을 써줄 수 있는 환경인 곳.
3. 보증금이 없는 곳.
4. 차 없이 방문하기 괜찮은 위치.
처음에는 한 4~5군데에 메일을 보내서 견적서를 받아보았다. (거래처 구글 문서 참조) 계산해보면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로 나올 듯했다. 그중에서 내 조건에 맞는 곳은 '탐북'이라는 업체였다. 가장 비싼 곳도 아니고 가장 싼 곳도 아니지만 나 같이 수량이 적은 소규모 출판사에 유리한 옵션이 많이 있었고 합리적으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책의 보금자리이므로 전화 통화를 한 다음 직접 방문을 해보기로 했다. 지도 검색했을 때는 가장 멀리(북한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오히려 홍대입구에서 경의중앙선 타고 종점까지 가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설명을 들어보니 인터넷 서점 물류센터들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배본하기에 굉장히 유리한 위치라고 한다. (호오~ 역시 알면 보이나니~)
뭘 사가지고 방문할까 고민하다가 서교동 특산물(?) 레어치즈 케이크와 당근 케이크와 쇼콜라 케이크를 챙겼다. 슬금슬금 빗방울과 미세먼지 때문에 망가질까봐 조심조심~
전차 안이 한가해서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지루할 줄 알았는데 멍하니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니 롱테이크샷으로 찍은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 없는 뚜벅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문산 역까지 차로 마중 나와 주셨다. 5분 정도 가니 도착!
귀여운 탐북 간판.
왠지 책과 잘 어울리는 간판이 센스 있어 보인다.
깔끔한 외관.
보안 장비도 잘 설치되어 있는 듯하다.
창고 랙에 책들이 꽉꽉 차 있다. 역시 깔끔하다.
여기서 책을 묶고 계신 것 같았다.
전체적인 인상은 참 깔끔했다. 사장님 두 분은 부부신데 원래 출판쪽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다고 한다. 출판쪽 일을 하셨다니까 더욱 신뢰가 갔다. 창고 중에 책 말고 다른 물품 보관도 같이 하는 곳도 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곳보다는 책에 집중된 곳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리고 출판의 특성을 잘 아시니까 일 처리할 때 소통도 더 잘 될 것이고.
1인 출판사에게는 댐지 사용료나 반품비 등을 받지 않으셔신다고 해서 또 좋았다. 물론 나중에 책 종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 돈을 내야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적은 비용도 부담이 되니까 그 부분을 배려해주시는 것 같다. 같이 커가는 파트너로 거래를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원래는 다음 책을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적었는데 탐북에 다녀온 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고 때문에 열심히 해서 많이 맡기고 싶어진...!)
책덕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셔서 나도 탐북이 무슨 뜻이냐고 여쭤봤는데 '타밈'이 히브리어였나 (아무튼)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게' '정직한' 이런 뜻이라서 항상 책을 다룰 때 그 말을 새기면서 하면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게 된다고 하셨다. (탐북은 그것을 줄인 이름) 나는 종교가 없지만 종교의 가르침대로 언행일치하며 삶을 꾸려나가시는 것 같아서 본받을 게 많다고 느껴졌다.
책덕에 잘 맞는 물류 업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집에 와서 떠올릴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었다. 특히 하고 싶은 것 하라고 젊을 때 경험하는 게 좋다고 응원해 주시고 첫 책 나오는 거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셔서 든든했고 거래처를 넘어 좋은 인연을 만난 것 같아서 감사했다.
그동안 기성세대를 하나로 묶어서 꽉 막힌 사람들로 치부하고 어른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라고 지레 짐작하고 이 사회의 모든 병폐를 그쪽으로 돌렸지만 직접 부딪히며 경험하면서 의외로 그렇지 않은 어른들이 많다는 걸 많이 느낀다. 그동안 나의 행동을 규제하고 묶었던 것은 나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가 만든 울타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제로도 존재하긴 하지만 내 모든 선택을 그 탓으로 돌리는 건 비겁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 창고는 계약 완료! 이제 지업사와 인쇄소 계약이 남았다.
※ 여기서 소개한 업체는 하나의 사례일 뿐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업체는 꼭 직접 가보고 얘기 나눠보고 거래하시기 바랍니다. 원낙 물류 업체를 이용한 후기나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견학기를 상세히 올렸습니다. 출판사마다 성향이나 사정이 다르므로 꼭 직접 견적도 내보고 방문도 해보고 거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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