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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기록/출판시작전

출판사 X, 그리고 대나무 숲 - 도가니가 끓고 있다

안티 베스트셀러 카테고리를 어찌 채울까 고민 많이 했는데, 이런 글을 쓰게 되니 참 기분이 묘하다. 요 며칠 사이에 트위터가 꽤 떠들썩 했다. 


9월 4일 출판사 X의 출현. 처음에는 그저 썩을 대로 썩은 출판사 내부인의 지치고 지친 넋두리 정도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흥미 반, 걱정 반으로 이 흥미진진한 내부 고발 성격의 트위터를 지켜보았다. 삽시간에 출판사 X의 소문이 SNS 속으로 특히 출판과 관계 있거나 문화 관련 종사자들의 관심이 컸던 것 같다.


9월 11일(혹은 9월 12일) 출판사 X의 계정이 없어졌으나 여전히 그 흔적은 온라인에 남아있다. 구글에 '출판사 X'를 검색하면 저장된 페이지가 나온다. 노동력 착취, 열악한 노동 환경, 법을 어기며 출판하는 행태 등이 올라와 있었다. (일부 트윗를 볼 수 있는 곳 :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world0707&no=740467)


트위터리안들은 충격의 멘션을 날렸다. 호기심은 검색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 출판사의 이름은 공공연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판사 X의 신변을 걱정하는 멘션도 이어졌다. 그가 고발한 출판사 내부의 모습은, 사실 출판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5개월 정도 근무했던 중소기업 사장의 행태와도 많이 유사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이미지에 집착하고 직원들을 혹사시키는, 보상 없이 노동자를 쥐어짤대로 쥐어짜는 고용자. 천박한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안하무인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는 고용자. 결국 직원들이 존경은 커녕 혐오와 역겨움을 품는데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아니면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능구렁이 같은 인간들. 


물론 출판사 X의 계정이 익명(나중에는 어느 정도 신원이 밝혀졌지만)이라서 모든 트윗이 100% 신뢰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출판사 X 또한 자신이 언급하는 출판사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해당 출판사의 해적판 출판 행위 등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라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X의 계정이 사라지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보진 못했으나 다음과 같은 증언이 있다.


https://twitter.com/johnfunnykim/status/245822328859131904

이 증언에 따르면 [출판사 X의 직원소집 멘션] -> [출판사 공식 계정에서 출판사 X 언급] -> [직원 채용 공고 게재] 순서가 된다.


출판사 X를 걱정하는 멘션이 올라왔다. 그중 어떤 트위터리안은 출판사 X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며 그의 안부를 전했다.


그 가운데 꺼져가는 듯했던 내부 고발의 불씨에 기름을 붓기 시작한 계정이 탄생했으니, 현재 활발히 트윗하고 있는 출판사 대나무 숲 계정(@bamboo97889)이다. 9월 12일에 만들어진 계정이며 출판사 X와 달리 집단 트위터 계정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비밀번호를 공개하여 누구든 지껄이고 싶은 사람은 로그인하여 트윗을 할 수 있는 계정이다. 그 와중에도 비밀번호는 97889로 시작하여 만든 사람의 위트가 눈에 띈다. (97889는 책 뒤표지에서 볼 수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 즉 ISBN 시작 번호이다.)


그 계정이 나타나자 마자 폭발적인 트윗이 올라와 한동안 계정이 리밋(아마 너무 많은 양의 트윗을 올릴 경우 잠시 정지되는 상태인 듯)이 되기도 했다. 리밋되는 동안 두 번째 계정(@bamboo97889_2)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트윗을 지우기도 하고 약간의 오해가 빚어지는 듯 정신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 같다.


또한 트위터에 출현한 새로운 형식의 집단체를 보면서 영화를 비롯한 문화 사업뿐만 아니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우리도 대나무 숲이 필요하다'는 멘션을 날리기도 했다.


블로그스팟(http://bamboo97889.blogspot.kr/) 등에 출판사 옆 대나무숲의 트윗을 저장되는 듯하다. 


왜 트위터는 폭주했는가? 일단 트위터 계정을 공유하는 집단체의 출현이 새로웠으며, 지식과 교양의 대표적인 매체인 (혹은 그렇다고 사람들이 인식하는) 책과, 책이 만들어지는 노동 현장의 괴리가 더욱 이목을 끌었던 대목이 아닐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야 워낙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뻔하니까 새삼스레 이슈가 그리 크게 되지 않는 것에 반해... (출판노동자들이 매일 느끼는 '지식인 사장'과 '고용자 사장'의 이중성은 트위터에서 볼 수 있는 혐오감과 역겨움을 분출하는 글에서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다. 또한 지식과 지혜를 다루는 '고상한' 직업과 먹고 살기 위한 일 사이의 괴리...)


요즘들어 출판 관련 이슈가 더욱 눈에 띄는 것과도 관련이 없진 않을 것 같다. 트위터에서도 크게 퍼졌던 『의자놀이』 사건도 있고, 최근 『기획회의』는 나라말 사건 관련 특집을 다뤘다.


얼마 전에는 특정 출판사 노조가 아닌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일하는 출판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 준비위원회(이하 지역분회)>가 결성되었고 8월 14일, 21일에 설명회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http://cafe.naver.com/booknodong, @happybooknodong)


또한 9월 11일에는 출판 파탄 정책과 출판진흥원장 낙하산 인사를 규탄하고 출판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의의를 가지고 '소리 질러 책을 불러 콘서트'가 열렸다(http://www.kopus.org/bus/b1.asp?b_idx=3999&b_type=T&b_gbn=R). 그러나 지금 당장 일하기가 벅찬 출판노동자들에게 출판진흥원장이 바뀐다고 현실이 개선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출판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와 욕과 걱정과 충격과 한숨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정신을 차려야 할까? 


과연 분노를 주요한 힘으로 하여 이끌어가는 이 집단 계정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온갖 출판계의 더러운 이면을 스크롤하며 '웃픈' 기분이다. (뱃가죽에 힘이 들어가며 실없는 웃음이 나오는 가운데 가슴속은 서늘하고 씁쓸하여 헛헛한 기분...) 분노 표출의 허무함에 등을 돌릴지, 새로운 출판노동자들을 수혈하여 맥을 유지할지, 혹은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지, 사실 흥미진진한 게 사실이다. 싱겁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게 놀라운 세상은 아니니까. 익명성을 바탕으로 치솟아 오른 불평불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냉소적인 결론에 이른다.


모니터 앞에서 뜨거웠다 차가웠다를 반복하며 손을 놀리고 있을 그들에게 어디서부터 시작하자고 해야할지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