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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기록/출판시작전

내가 '나'와 '꿈'에 집착하는 이유

내가 아는 내가 나 맞나?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걸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뭘까요?"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우리들 앞에 툭 하고 던졌던 질문이었지. 선생님은 그저 수업시간을 때우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겠지. 그런데 나는 왠지,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질문을 받은 날 내 삶의 화두를 짊어진 느낌이야. 그 때 당시 내가 대답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내 이름과 좋아하는 과자, 좋아하는 놀이 정도였지. 그런데 똑같은 이름에 똑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쌔고 쌨으니까 난 뭔가 함정에 빠진 듯 한 기분이었지. 그 질문을 받고 난 후 어느 샌가부터 내 인생의 목적은 무척 선명해졌어. 그건 바로 진정한 '나'를 찾는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태어난 순간의 나는 나지만 완전한 내가 아니라고. 무슨 요상한 헛소리냐고?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날 때 자신만의 특성을 물론 가지고 있지만 그게 표현되고 발현되는 건 살아가는 과정에서잖아. 그리고 가끔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나도 모르게 한 내 행동에 스스로 놀라본 적. '어?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그래 바로 그런 거야. 나는 내 인생 전체를 거쳐서 나를 알고 싶은 거지. 지구에 온 목적부터 덧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와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음식, 음악, 사람, 일을 알고 싶어.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자신만의 가치관이 뚜렷한 친구를 참 많이 동경했어. 난 참 특징이 없는 아이인데, 그 아이는 유독 반짝반짝 빛이 났었지. 그 아이는 노래를 잘 하는 아이였어. 지금이나 그 때나 미래에 대해 물었을 때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노래뿐이라는 대답을 했지. 다른 건 없기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뭔가 확실한 자신만의 '무언가'를 가진 그 친구가 참 부러웠지.


내 눈에 보이는 건 멋지게 꿈을 이룬 사람들뿐이었으니까 그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릴 생각을 못 했나봐.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데, 내가 가진 재능은 밖으로 내보이기가 힘든 재능이었거든. 노래, 그림, 악기 연주, 운동 같은 것들은 눈에 띄는 재능이지만 그렇지 않은 재능이 더 많잖아. 국민MC라고 불리는 유재석이 가진 재능도 늦게 발견되었지. 그가 남보다 뛰어난 건 사람들의 대화를 중재하고 포인트를 잡아 웃기는 거니까. 그의 재능이 발휘되기 좋은 상황이 오기까지 많이 기다려야 했지. 주위 친구들 중에도 살펴보면, 한마디로 표현 가능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보단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훨씬 많더라구. 그 친구들도 살펴보면 참 특출난 재능이 있는데, 자신들이 별 특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안타까울 때도 있어.


나도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면서 참 나태한 대학생활을 했어. '아웃사이더'로 수업만 들으러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었지. 졸업할 때쯤에는 매일 고민만 하고 살았지. 이래 뵈도 나도 한때는 야망 있는 사람이었다고. 실업계 고등학교였지만 전교 1등도 했었지. 그런데 그게 다 뭐야? 정말 자신을 위해서 한 게 아니라면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어. 수도권 4년제 대학을 그럭저럭 졸업했으니 전공 살려서 괜찮은 대기업에 어떻게든 입사한 다음에 열심히 돈 벌어서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여행도 가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그런데 왜 이런 상상을 하면 내 가슴이 꽈악 조여 올까? 숨을 쉴 수가 없어. 왠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특히 자기소개서를 쓸 때, 지원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해서 어떤 지위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쓸 때 말이야. 내 전공에 맞춰서 써넣은 (그나마 적성에 맞을   듯한) 그 직무가 과연 나에게 맞을지 의심이 지워지지 않는 거지. 물론 어른들 말씀처럼 어디든 들어가서 열심히 10년 짱박으면 내가 잘 하는 뭔가가 생길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을 안 하고 일을 벌이면, 시간이 흘러 아주 아주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어. 뭐, 어떤 삶을 살든 후회는 하겠지. 그런데 그 끝에서 후회할 때 누군가를 탓하거나 주위환경을 탓하고 싶지가 않았어. 내가 직접 선택한 거라면 어떤 그지같은 삶이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말이지.


뭘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시기라는 건 바꿔 생각해보면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더라고. 그게 더 오랜 시간 나를 고민하게 만들긴 했지만, 내가 아직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지 뭐야. 영국으로 유학을 갈 수도 있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도 있고(물론 돈은 없지만), 거렁뱅이로 세계 일주를 할 수도 있고, 한 3년 죽었다 셈치고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 아니면 생뚱맞게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살사댄서가 될 수도 있고, 브라질어 전문가가 될 수도 있고. 비록 상상뿐이더라도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했던 보편적인 인생과는 다른 어떤 삶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자유롭게 했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갇힌 미래를 보고 살아왔는지 깨달았거든.


물론 나이를 먹고 돈을 벌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알게 될 거야. 그 때 가서 모은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제약이 많아지잖아. 새로운 가족이 생길수도 있고, 다른 사정이 생길수도 있겠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안정된 삶에 젖어서 몸과 마음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야. 그리고 30살이 넘어서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깝깝하더라고. 30살 때 길을 돌리는 것보단 지금 방황하는 게 쉽잖아. 20대는 원래 이것저것 실험하고 도전해보는 시기니까. 뭐,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어쨌든 그래서 책을 쓰기로 했어.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해보고, 만약 방황하는 걸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은 등을 떠밀어주고 싶었어. 그냥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해도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잠깐 방황해도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그렇게 낙인찍지 않는 한 '낙오자(Loser)'가 되진 않는다고.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면 쓸데없는 걸 원하게 되지 않아. 좀 더 담백한 삶을 살 수 있어. 좀 덜 먹고, 덜 입을 순 있지만 쓸 데 없는 욕심은 적어지지. 정신적으로 만족하게 되니깐. 물론 자신이 선택한 삶도 고달플 때가 있겠지. 하지만 내가 직접 선택한 삶을 사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충만해지는 것 같아. 마치 '나'라는 종교를 선택한 것처럼. 나도 지금 막 선택을 했어. 부모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수준을 맞추기 위한 것도 아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선택. 너도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살펴 봐. 20대 너의 모습.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엄청 궁금하지 않니?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될거야. 그리고 누구도 할 수 없는 영역, 이 세상 누구보다 너다워지는 거지. 세상에서 최고로 멋있는 사람, 예쁜 사람, 똑똑한 사람이 될 순 없지만 세상에서 최고로 나다운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까.


꿈을 가지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비난할 수는 없어.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는 거고 그런 것들조차 그 사람의 특징이니까. 하지만 점점 발전만을 외치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 20대는 어쩌면 이 빠른 세상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세대일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우리가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자. 서로 경쟁하듯이 세상의 속도를 쫒아가기 보다는 각자의 다양함을 발굴해서 각자의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런 세상이 오면, 모든 것을 빠르게만 만드는 지금의 세상보단 흥미로울 것 같지 않아? 


201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