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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기록/출판시작전

동네에서

정말 오랜만에 한의원에 간 것 같다. 아니 게다가, 혼자 한의원에 간 건 처음이다. 

나의 엄마 의존증이 얼마나 심한지 또 깨닫는다. 대체 인생에 눈 딱 감고 행동 먼저 

한 적이 있기나 한 건지, 뒤돌아보며 한심해 한다. 뭐, 그닥 자책할 일은 아니지만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어쨌든 일단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회사 근처에 한 군데를 점찍어 놨다가 오늘 갔던 것이다.

(참고로 근처 다른 한의원은 네이버 병원 소개에 뭔놈의 알바글을 그리 티나게 올려놨는지...)

삐까뻔적한 인테리어 없음, 통과!

과잉친절도 아니고 불친절도 아닌 간호사 선생님의 응대, 통과!

은근한 탕약 다리는 냄새, 향수를 불러 일으키네.

사실 검색했을 때 좀 오래된 곳 같아서 할아버지 선생님이 있으려니~했는데,

젊고 훈훈한(이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는!) 선생님이 계서서 놀랐다.


앉자 마자 아팠던 역사(!)를 줄줄이 펼쳐놓고 나니

차분한 눈빛으로 잠시 응시하다가 조분조분한 말투로 진료를 해주시는데, 참 좋다.

몇 번의 진료 경험을 되돌아보면 의사 선생님들은 열이면 아홉,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 (주절주절) 아, 네. (청진기, 진맥) 차트에 쓱쓱쓱~ 

약은 3일치 지어드릴께요. (끝. 안 나가고 뭐하삼?)

이런 식이라 뭐 물어봐야지~하고 맘먹고 왔다가도 빈손으로 나가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만난 선생님은 자기 의견(알아먹지 못할 차트 영문 말고)을 말해 주고,

치료도 선택할 건지 환자에게 묻고, 뭔가 궁금한 게 있는지 계속(정확히 4번) 물으셨다.

아... 경청하는 의사 오랜만에 만나니 감동이네.

(거기에 대고 나는 '가격'이 얼마냐고... 아, 경박한 단어 선택...! 돈걱정만 머릿속에 가득찬 저렴한 인간~)


여튼 오랜만에 침 맞고, 뜸도 하고 나오니 기분이 좋다. 치료비는 칠천오백원.

진정성 있는 의료 서비스를 받으니 사실 값어치 있다는 생각에 아깝지 않다.


한의원에서 나온 후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문구점을 겸하는 서점으로 갔다.

예전엔 이런 곳도 꽤 있었는데, 요즘엔 찾기 힘들다.

책이 잘 팔리지도 않을 터인데 잘 되려나 모르겠다.

(땡스북스 같은 컨셉이 있는 서점도 아니고 그냥 진짜 동네 서점... 90년대에 참고서 사고 하던...)

이리저리 책 구경을 하다가 베스트셀러 코너가 있길래 눈여겨 봤다. 

현재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랑 겹치는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었다.

계산할 때 사장님한테 베스트셀러 매대는 어떤 기준으로 놓으시냐고.

애매하다고 하시긴 했지만 그냥 사장님 기준으로 놓으신다고 했다. 가끔 광고 많이 하는 책도 놓으시고.

하지만 요새는 그리 배치를 바꾸지 않았다고. 팔려야 뭘 바꾸고 할텐데...하시면서.

팔리는 게 베스트셀러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책 매출이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나오지 않아서 민망해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 코스는 맥도날드다. 어렸을 때 패스트푸드점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얼마나 신세계였는지 모른다.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아도, 패스트푸드가 서민음식 아니었나.

롯데리아 데리버거 천원, 케이에프씨 커널버거 천원, 주린 배를 배불리 채우기에 얼마나 달콤했던 양식이었나. 

왠지 90년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이나마 어렸을 때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저 '옛날이 좋았어~'하며 과거를 미화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