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처럼: 눈치 보지 말고 말달리기>
옮긴이의 글
영국 드라마 <미란다> 속 미란다는 도무지 어른이 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발 결혼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다니며, 사람들하고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놀기의 내공을 쌓느라 바쁩니다. 게다가 미란다의 삶은 매번 실수를 저지르거나 창피를 당하는 순간의 연속이지요. 여자가 옷을 훌러덩 벗어재끼는데 야하지 않고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은 미란다가 유일하지 않을까요? 책에서도 미란다는 여전합니다. 이런 미란다를 보면서 민망하다고 느낀 분도 있고 통쾌하게 대리만족을 느낀 분도 있을 겁니다. 저는 둘 다였습니다. 자라면서 교육 받고 주변의 시선을 통해 체득한 ‘체면에 대한 강박’이 제 안에 ‘깐깐한 선비’를 만들어냈거든요. 교양 있는 사람은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하고… 제가 만들어놓은 꼬장꼬장한 틀을 미란다는 와장창 깨부숴주었지요. 진지한 자리에서 웃통을 벗어재끼는 미란다를 볼 때, 말달리기로 무색무취의 회색 도시를 가로지르는 미란다를 볼 때 내 안에도 미란다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맞추기가 힘겨워질 때는 ‘에이, 너희가 이상한 거거든?’이라고 소리치며 내 멋대로 굴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유치하고 찌질하면 좀 어떻습니까? 어쩌면 그런 창피한 순간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닐까요?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저도 이제부터는 눈치 보지 말고 말달리기하듯 살아가려고 합니다. 공감하는 여러분도 많이 동참해주세요. 이 세상에는 아직 ‘미란다’가 많이 필요하니까요!
미란다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며 별 생각 없이 웃다가 점점 미란다를 연기하는 배우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훌러덩 옷을 벗어 던지며 연기할 수 있는지, 쇼에 나오는 창피한 상황들이 정말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미란다 하트라는 배우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문명의 이기인 ‘구글링’을 통해 열심히 미란다를 ‘덕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눈앞에 바로 이 책의 원서인 『Is It Just Me?』라는 책이 포착되었습니다. 미란다의 책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반가워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미란다를 알게 되었고 더욱 좋아하게 되었으며 직접 번역해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감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미란다는 어렸을 때부터 코미디언이라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표현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나 봅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현실적인 장래희망과 타협했던 미란다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집니다. 어린 미란다는 ‘내가 감히 코미디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며 자라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하고 싶은 일과 점점 멀어져 가던 삶을 견딜 수 없었던 걸까요? 대학 졸업 후 미란다는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2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지금 TV에 나오는 미란다를 떠올리면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입니다.
저도 번역을 하고 싶다고 상상만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인 줄 알고 살았지요. 하지만 정작 매일 하는 일은 회사에 갔다가 집에 와서 드라마를 실컷 보다가 잠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만교 작가가 쓴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를 읽었는데 “인간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또 자 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정말로 도움되는 일인지를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글을 접했습니다. 뒤통수를 때려 맞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냥 ‘번역가가 꿈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하지만 진심으로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닐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지금 나는 번역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하는 일이 나의 분수에 맞는 일인데 이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핑계를 대기 위해 꿈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욕망에 대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공황장애를 극복한 미란다는 직장 생활을 하며 매년 에든버러 공연 페스티벌에 참가합니다. 아마 굵직한 공연이 아니라 관람객이 적은 소규모 공연부터 시작을 했겠지요. 회사에서는 틈날 때마다 사무용품 창고에 처박혀 손전등을 켜고 코미디 대본을 쓰곤 했고요. 꿈을 꾸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조금씩 꿈을 실행하고 있었던 미란다. 그런 미란다의 책이었기에 저도 번역하고 싶다는 마음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란다는 이 책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조금씩 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지요.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요. 요즘 세상은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이런 저런 가짜 꿈을 던져대지만 그런 꿈 말고, 진짜로 나에게 맞는 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꿈이라도 하나씩실현시키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진정 원하던 방향으로 삶이 움직이지 않을까 꿈꾸어 봅니다.
영국에서만 통용되는 문화 코드가 책 전체에 깔려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각주를 주렁주렁 단 부분이 있습니다. 조금 거슬릴 수도 있지만 알고 나면 더 재밌게 책을 즐길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린 미란다가 살았던 시절의 복고 문화가 우리나라와도 참 비슷한 게 많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복고 문화를 재조명하여 큰 인기를 끌었지요. 어릴 때 들었던 음악과 TV 프로그램이 한 나라의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책덕 블로그에 ‘미란다처럼 사전’이라는 항목으로 정리해두었으니 책 바깥에서 책의 내용을 음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특히 2장 ‘음악 유전자, 없어도 괜찮아’에서 등장하는 생소한 노래들을 쭉 정리했으니 꼭 한번 들어보세요. (유튜브가 있어서 다 들어볼 수 있네요. 세상 참 좋아졌죠?)
이미 세상에는 책이 참 많지만 이렇게 유치하고 찌질하며 사랑스러운 책을 바라던 독자가 분명 있겠지요? 깊이가 있거나 지식이 담긴 책은 아니지만 이 책만이 가진 매력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다 보면 답답한 현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암울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사람에게는 진지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요. 한없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어디선가 촉발된 ‘피식’ 하는 웃음 하나로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졌던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아마 그 웃음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담겨 있는 소통의 결과일 듯합니다. 이 책이 잠시라도 여러분의 마음을 가뿐하게 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옮긴이로서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듯합니다.
미란다 하트가 시트콤 <미란다>를 완성시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듯이 이 책을 만들 때도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응원이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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