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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 출판 일지

끝나지 않는 표지 방황기

너무 오랫동안 책의 내용 한복판에 서 있다 보니 정작 제목과 표지를 정할 때가 되자 자기 객관화가 잘 안된다. 책의 내용이 우선순위 없이 머릿속에 섞여 있다 보니 무엇을 밖으로 꺼내고 무엇을 안으로 집어넣을지 분간이 안 되어서 제목과 표지의 방향을 잡기가 참 어렵다. 그 삽질의 기록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1단계. 미란다가 보여야 해!

이 시기에는 '무조건' 미란다가 대빵만하게 뙇! 하고 박혀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였다. 이 책이 독자의 눈에 띄려면 그래야 한다고 맹신했던 시절...




여러분~ 시트콤 <미란다>의 그 미란다에요! 라고 간절히 외치는...


ㅁㄹㄷㅊㄹ...




2단계. 미란다 같이 보이니? 장난감 가게를 그리자!

1단계는 좀 재미가 없고 미란다랑 닮은 것 같지도 않아서... 다시 생각한 것이 시트콤 <미란다>의 배경을 스케치로 까는 것. 어찌나 애처롭게 시트콤 인지도에 업혀가려 했는지... 아이구 창피해. 이때 미란다의 장난감 가게를 몇 번이나 다시 그렸는지 모른다. 근데 어찌 잘그리려고 할 수록 느낌은 별로가 되어가는 이상한 현상...








사실 책 내용에는 미란다의 장난감 가게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일러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 일이긴 했다. 그러다가 책표지로는 너무 색이 많고 정신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니 원래 정신 없는 거 좋아한다면서...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단다!)



3단계. 경쾌하게! 유쾌하게! 색을 넣자!

뭔가 억지로 경쾌하게, 유쾌하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단계. 침체된 노래방 분위기 띄우려고 트로트를 불러보지만 분위기가 더 나빠질 뿐인.... 그런 애달픈 노력이 계속되었다. 텀블러 등에서 책표지로 이미지를 검색해서 자료를 참고하기 시작. 그러다가 민트+보라 조합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난 미란다의 몸통을 자르고 싶었다. 뭔가 정신 없으면서 비대칭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하아...

그리고 민트색이 뭔가 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보라색 떡칠! 두둥-


가만히 보라색 표지를 바라보니...

"내가 미란다다!" "내가 말뛰기다!" "내가 흥겨운 책이다!"

라고 너무 외치는 듯 1차원적인 표현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아... 이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후퇴~ 후퇴~

(청소년 소설이 주로 이렇게 제목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1차원적인 일러스트를 대빵만하게 넣는 것 같다.)

청소년 소설은 아니잖아. 독자가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가릴 건 좀 가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미란다를 아는 사람들만을 대상 독자로 생각해서 너무 시야를 좁게 가졌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4단계. 핑크 빼고 다 나가!

다시 연습장에 표지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이것 저것 하다가. 타이포만 남기고 일러스트는 깔끔한 선만 남기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미란다 몸통 가운데에 타이포를 넣는 형식으로 레이아웃을 잡아봤다.



대충 그려본 스케치.

 (미란다의 몸통을 자르려는 나의 집착)




그러나 너무 공간이 비어보여서 기각!

(밑에 굴러가는 건 과일 친구가 맞습니다.)



복고풍 디자인. 

(와순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의외로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5단계. 빼, 빼, 다 빼! 제목이 눈에 들어와야 해!

이때 다시 다른 책표지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제목 타이포그래피에 가장 힘을 주는 편이었다. 제목과 잘 맞는 서체를 쓰거나 손글씨를 써서 제목이 한눈에 쏙 들어오도록. 그래서 제목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쇼닝에게 조언을 구했다. 빵실한 글씨로 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들여서 시안을 만들어봤다.




그림자 지는 오후에 미란다 혼자 놀고 있어... 외로워... 'ㅅ'





베이지색을 깔고 핑크&블랙으로 모든 요소를 정리했다.

약간 허전하긴 한데 깔끔하고 제목이 한눈에 들어와서 괜찮은 듯하다.



일단 이 정도까지 정리하긴 했는데, 사실 미란다의 장난감 가게를 배경으로 한 표지에도 살짝 미련이 남아있긴 하다.




이제 제작 일정을 미루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으니, 딱 두 가지 시안만 뽑아서 결정해야 겠다.

아마 더 이상 내 능력 내에서는 더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 (디자이너 없이 하기로 했으니 한계를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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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듬어서 페이스북 설문조사 한번 할게요!

하지만 과반수가 넘어도 내 마음에 드는 걸로 결정할 확률이 많다는 거!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