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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기록/일꾼 생활

『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편집하면서 재밌었던 부분들


원제 『They laughed at Galileo(갈릴레오를 비웃은 사람들)』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품을 비웃었던 사람들에 중점을 둔 제목이지만 사실 책 내용을 보면 비웃음 당했다기보다는 주목 받지 못했던 아이디어나 우연히 탄생한 발명품이나 음모론에 의해 사라졌던 물건 등 다양한 역사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그래서 번역서 제목에는 '흑역사'라는 단어를 넣었다. 인간사 자체가 흑역사를 적립하며 지금까지 왔고 지금도 흑역사는 진행 중이기도 하다. 뭐, 이렇게 말하면 흑역사로 너무 다 싸잡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올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들을 정리해 보았다. 


음모론 흑역사

이 책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음모론을 다루는 부분이 나온다.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대목은 바로 'EV1'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유일하게 거의 전 앨범을 다 구매한 밴드가 바로 자우림인데 자우림의 '음모론' 앨범에 바로 'EV1'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냥 좋아서 무한반복하다가 어느 날 문득 가사가 무슨 내용이지 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사집을 잘 안 봄) 생각 없이 들을 때는 'EV1이라 불리던 의 얘기'라는 가사를 'EV1이라 불리던 의 얘기'라고 들어서 사람 얘기인가 했다. (자우림 다른 노래 중에 '거지' 같은 노선인가 했음.)

그런데 후렴구에서 "사막 한 가운데에 버려진, 빨간색 초록색 이브이원~"이라는 가사를 생각하면서 그제서야 '자'가 '차'로 들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대체 이브이원이 뭘까 상상의 나래만 펼치다가 나중에서야 검색해보고 그게 GM에서 생산했던 전기차의 이름이었다는 걸, 그리고 음모론이라는 앨범에 실리게 된 맥락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망망대해 같은 사막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두 대의 차를 상상하게 된다. 이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인간은 때로 신의 이름을 외치면서 증오와 몰이해로 살인을 저지르고

타인의 불행, 아직 오지 않은 고통은 내 것이 아니니까 아랑곳하지 않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요 부분이다. EV1에 얽힌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 글에서 참고할 수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흑역사

원제에서 제목으로 뽑은 갈릴레오의 에피소드.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망원경으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갈릴레오 심정을 생각하면 참 난감하긴 하다. 그 당시의 세상은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 하에 돌아가고 있었으니 아무리 학자라도 그걸 거스르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그냥 발견한 것을 말하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었다. 뭐, 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긴 하다. 그때는 그 권력이 로마 가톨릭이었고 지금은 다른 세력으로 변했을 뿐. 어쨌든 신기한 건 갈릴레오가 그렇게 혁신적인(?) 주장을 하고서도 비교적 평화롭게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함부로 예단하지 말 것, 흑역사 적립!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무것도 예단할 수가 없어지긴 한다. '가능성'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 같아 보이다가도 그냥 '감' 하나에 의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앞으로 '절대 안돼!'라는 말까지는 쉽게 하지 못하겠다. 어느 정도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두는 것이...


디즈니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인생역전

디즈니가 처음에는 힘든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혹평을 받았던 것은 몰랐다. 작품들에 대한 반대 코멘트도 참 가지가지다. 비틀즈, 조지 루카스, 조앤 롤링, 마돈나... 등등. 이런 사람들을 보면 그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렇게 비판이나 반대 의견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자기 길을 걸어간 뚝심이 대단해 보인다. 


단연, 인상적인 낙하산 이야기

높은 데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 호기심이 일었겠지. 그렇지만 그걸 직접 몸으로 시험해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500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뒤에야 찾아온 낙하산이라는 물건에 대한 굳건한 믿음.


잘나갔던 사람의 말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야

질레트 면도기를 발명한 질레트 아저씨. 말년에는 괜히 타이밍 잘못 타서 투자했다가 파산 상태에서 홀로 세상을 떴다고 하니 인생사 알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드라마틱한 인생들 덕분에 흥미진진한 책들이 세상에 가득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라마틱한 삶보단 조금 무미건조하더라도 정신 사납게 살고 싶진 않다.


최초로 감옥에 간 디지털 범죄자

클리퍼드 스톨은 당시에 디지털이 파고든 미래의 생활상을 얘기하면서 디지털 네트워크가 정부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헛소리라고 했는데, 이 말은 꽤 통찰력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이라는 도구는 다른 도구와 마찬가지로 양날의 검이므로 장미빛 미래를 전망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나저나 전자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는데, 솔직히 아직까지는 그의 말을 부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기는 하다. 불쾌한 경험까지는 아니지만. ^ ^;

마지막에는 클리퍼드가 자신이 했던 틀린 예측이 창피했는지 자중해야겠다고 인터뷰한 내용도 나오는데 실소가 터졌다. 



SF소설계의 네임드(?) 작가로만 알았던 아서 C. 클라크의 예언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고 예리하다. 대단히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상상을 하는 작가였다는 사실을 이 내용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읽다 보면 단순히 소설가가 아니라 굉장히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기억하기론 『유년기의 끝』을 읽다 말았던 것 같다. SF의 고전격인 책이라 요즘 읽기엔 신선함이 떨어지지만 1950년대에 쓴 책이라고 생각하면 외계생명체에 대한 상상력과 구체적인 묘사가 새삼 대단하긴 하다.)


만호 이야기

아이고, 만호 아저씨. 로켓들을 붙인 의자에 올라 먼 하늘로 날아간 최초의 우주비행사. 그나저나 '만호 크레이터'라니 열정적인 숭배자들의 작업은 어쩐지 낭만적이긴 하다.  


에어컨과 힘의 이동

에어컨, 단순히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발명품으로 생각했는데 그 계기가 잡지 인쇄소에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니 흥미로웠다. 그리고 에어컨 덕분에 더운 지역이 대도시로 성장하여 미국의 지역간 힘의 균형을 이뤘다는 시선도 재미있다. 


톰슨, 빗나간 예측 성애자

그 시절, 비판을 일삼았던 남자. 


내가 총리가 될리가 없어! 

마거릿 대처가 이런 말을 했었다니 재미있다. 그나저나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사람인데 마거릿 대처에 대한 평가가 신랄하다. 블랙유머 작렬. 


정말로, 그야말로 어두운, 흑역사

맥심은 한 미국인의 조언을 듣는다.

"돈을 떼로 벌고 싶다면 이 유럽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싹 죽일 수단을 발명하라고요."

그 조언은 참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맥심은 자신이 발명한 기관총을 '평화 창조자'라는 별명을 붙여 영국에 소개했고, 정말로 그 총은 유럽인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데 일조했다. '평화 창조자'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물건인가? 인간의 이기심과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발명품이 아닌가 싶다.


잔인한 흑역사

아이들에게는 폭력이 나쁜 것이라 가르치면서도 버젓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어른의 세계를 보면 참 착잡하다. 그러면서도 막상 전쟁을 모티브로 한 게임을 즐길 때 흥미로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 중에 하나인가 싶기도 하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전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최종 목표이고 그러려면 상대의 전력을 최대한 깎아야 한다. 여기에서 정말 잔인한 발상이 탄생한다. 목숨을 끊는 게 아니라 최대한 많은 부상을 일으킨다는 발상. 그 잔인한 발상의 결과물이 유산탄이었다고 한다. 

병사들은 죽고 가족들은 눈물을 흘린 전장 뒤에 국가의 승리를 자랑스러워 하고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떤 유산

가황 고무를 발명한 찰스 굿이어는 자신의 발명품이 어마어마하게 성공을 거뒀는데도 그 혜택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저렇게 대인배스러운 말씀을...

"인생에서 직업과 일이 주는 이점은 돈으로만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뭔가를 심었는데 아무도 수확하지 못할 때 비로소 마땅히 후회할 만하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 같은 순진한 소리라기 보다는 처음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몰두할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뒀는지에 따라 결과에 따른 내 감정이 달라진다는 말 같다. 무조건 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다면 저렇게 말할 수 없었겠지. 분명 굿이어 아즈씨는 돈! 돈! 하면서 고무를 만든 게 아니라 이거 뭐지, 뭔가 굉장한 걸 만들 수 있겠다! 라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달려왔을 테니까. 그리고 누군가 그 혜택을 보고 있고. 그렇다면 굿이어 아즈씨에게 지난 시간은 더 이상 흑역사가 아닌 것이다.

위에서 봤던 맥심 사례와 비교하면 세상사 참, 극과 극이다.


작성일시 : 2016년 1월~12월

2017년 2월 스팸 공격으로 삭제된 글 재업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