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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 출판 일지

마음의 의지가 되어주는 출판사

혼자 출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않았던 어느 겨울, 우연히 한 카페에 들른 적이 있다. 근처에 병문안을 갔다가 잠시 시간이 비어 차나 한 잔 할까 하고 들어간 가게였다. 생소한 동네의 생소한 카페의 책장을 훑어 보다가 책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소박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만듦새가 내 손을 이끌었던 것 같다. 제목은 『사하라 이야기』. 책 앞뒤를 살펴보며 어디에서, 누가, 언제 만든 책인지를 찾아봤다. 막내집게 출판사, 번역하고 만들다. 직접 번역하고 만든 책이라니... 어떤 책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재미있지 않았다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냥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하라 이야기』는 내가 책을 낸다면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재밌고 매력적인 책이었다. 무작정 사막에 살고 싶어서 스페인 남편과 사하라에 신혼집을 차린 대만 여성, 싼마오. 그녀의 거침 없는 묘사와 글솜씨에 매료되어 집에 오자마자 책을 주문한 기억이 난다. 요네하라 마리나 한비야의 책처럼 여성이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차이와 사이를 기록한 책은 묘하게 나의 마음을 설레고 즐겁게 한다.



그 뒤로 나는 『사하라 이야기』를 두 권 샀다. 이제 세 번째로 같은 책을 살 예정이다. 두 권 모두 선물을 했다. 한 권은 3년간 다니던 회사를 나올 때 동료 편집자에게 주었고, 한 권은 미국으로 새로운 삶을 살러 떠나는 친구에게 주었다. 책을 선물할 때는 몇 가지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되도록이면 내가 읽은 책일 것.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책일 것. 받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의미가 담긴 책일 것. 그런 기준에서 이 책은 두 사람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었다. 


동료 편집자에게 선물할 때 썼던 편지에서 이 책에 대해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싼마오라는 대만 작가가 쓴 책인데,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더라구요. 대만의 한비야라고 하면 좀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한비야가 나쁜 평 받는 건 차치하고...) 근데 이 분은 요절했어요. 스펙타클한 삶은 왠지 젋은 나이에 마감되는 게 더 드라마틱하긴 하죠. 실제 인물에게는 비극이지만. 근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지루한 생보단 그게 그 사람에겐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우쨌든 그냥 재밌는 책이에요.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또 하나, 책을 만든 사람에게도 정이 가더라구요. 1인 출판으로 직접 번역해서 책을 냈더라구요. 막내집게라는 출판사구요. 이 책을 만났을 시점에는 내가 비슷한 상황이 될 거라 생각지 못했었지만... 이런 사람들은 응원하고 싶더라구요. 이유 막론하고요. 


이 책이 책장에 없으니 왠지 허전하다. 어서 다시 채워 넣어야지. 


싼마오의 다른 책인 『흐느끼는 낙타』도 재미있게 읽는 중이다. 나중에 막내집게 출판사 블로그에 찾아가 보니 출간되지 않은 싼마오의 작품을 다른 출판사에서 계약했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조금 안타까웠다. 물론 계약의 세계는 냉정하겠지만 출판사의 정체성과 상당히 일치하는 작가의 책이 그 출판사에서 쭉 나오지 않는다니, 직접 그 작가를 국내에 소개한 출판사의 입장에 너무 감정을 이입했는지... 참 섭섭했다.


직접 만나진 않았지만 응원하고 싶은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내게도 큰 힘이다. 세상에는 대박이 아닌 자신이 꿈꾸는 것을 조금씩 만들면서 꾸준히 꿈틀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직접 만나서 말을 섞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같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뒤로 물러서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오늘도 따뜻한 마음과 굳은 신념으로 고군분투하는 모든 1인 출판사(및 1인 영세업자)에게 리.스.펙.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