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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탄생하는 유쾌한 우주, 달팽이의 별

영화 <달팽이의 별>을 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나무와 교감하는 주인공이다. 가만히 나무를 끓어안은 모습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무언가가 두근거렸다.


편집 방식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어 좋았다. 러닝타임도 길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간추려 담은 듯, 담백한 느낌이다.


감독의 인터뷰 중에 영찬씨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구도자', '수도승' 같은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는 부분이 있었다. 내게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순호씨가 영찬씨와 소통하는 방법인 점화(손등을 통해 전달하는 수화)는 친구와 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뭐...해?" 순호씨와 영찬시 각자의 세계, 그리고 서로만의 세계가 좋았다. 그냥 보기 좋았다.

중간중간 삽입된 영찬씨의 글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외로울 땐 외롭다고 하여라."

"지구는 승차감이 없는 열차 같다."

(기억에 의존해 쓰다보니 살짝 틀릴 수 있다.)


영화는 유쾌했고. 진한 뒷맛을 남겼다. 우주 어딘가에 있을 녹색별, 달팽이의 별을 생각하면 일상에서도 웃음을 머금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많은 걸 보고 너무 많은 걸 듣는 내 생활과 비교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어디선가 주워 들은 그리스 신화가 생각난다. 에피메테우스라는 신이 창조물들에게 골고루 능력을 한 가지씩 나눠주는 일을 맡았는데,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인간에게는 주는 걸 빼먹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은 갑각류처럼 껍데기도 없고,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이나 손톱도 없고, 조류처럼 날개도 없고 하다못해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조차 없게 되는데... 이걸 수습하기 위해 에피메테우스의 형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다.


불은 무엇을 상징할까. 다른 동물과 다른 능력.
그 능력 덕분에 인간은 여기까지 왔다. 도시를 세우고 공장을 세우고 자동차를 만들고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고 모든 것을 가공하고 돈으로 거래하고 컴퓨터와 TV로 24시간 미디어를 퍼뜨려 눈과 귀를 막는다.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쓸데없이 뛰어난' 능력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과하디 과한 인간 문명의 수레바퀴가 어디까지 굴러갈지...걱정도 되고...


이런 말이 어떤 무게감을 담아야 하는지, 주제 넘은 건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나도 우주인이 되고 싶다.



달팽이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