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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 출판 일지

표지 생각

지금 책덕 사무실(겸 집) 분위기는 침체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표지' 때문이에요! 흑흑- 한번 정하면 쉽게 바꿀 수 없고, 책의 이미지를 결정 짓는 책의 얼굴이기 때문에 방향을 잡기도 결정을 하기도 참 어렵네요. 1월 말에 표지 방향을 잡아보려 고민했던 글을 올린 적이 있지요.


2015/01/27 - [책덕방 출판 일지] - 책표지 만들기!


책표지를 만들 때는 크게 두 가지 과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컨셉을 구체화하는 과정(제목 선정 포함)과 그 컨셉을 형상화하고 물체화하는 과정이지요. 보통 출판사에서는 편집자가 앞부분을 담당하고 디자이너(와 제작사)가 뒷부분을 담당하곤 하지요. 편집자일 때를 떠올려보면, 제목과 표지를 정하는 일은 책이 출판되어 팔리는 순간까지도 맞게 한 것인지 자신에게 의심이 드는 일이었어요.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제 성격 탓일 수도 있죠.)


전문서 편집자로 일했었기 때문에 어떤 책은 그냥 책이 다루는 주제를 제목으로 내세우면 될 때도 있었어요. 화려한 이미지를 쓸 일도 적었구요. 그때는 콘텐츠에 대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을 가장 많이 고려했던 듯합니다. 


하지만 독자로서의 저는 편집자로서의 저와 취향이 전혀 달라요. 이런 걸 디자인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디자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디자인은 좋아하지만 장식적이거나 심미적인 디자인은 별로 선호하지 않거든요. 특히 물건에 한해서는 극단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실용주의지요. 


알록달록한 책표지를 구경하는 건 물론 즐거운 일이에요. 하지만 가끔은 책표지에 현혹당해 책의 내용을 잘못 짐작할 때도 있어요. 과대포장한 광고를 보느니 차라리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제목이 적힌 것만 보이는 게 책을 고를 때 오히려 도움이 되더군요.



이렇게 생긴 과자를 기대했는데, (매끈매끈한 과자)



(출처 : http://camelion.tistory.com/1643)

이렇게 생긴 과자가 뚜둥!

짱구가 길어졌을 뿐이잖아... (맛은 괜찮았어요...맛있으면 됐죠!)






책장에서 비교적 심플해 보이는 책들을 꺼내봤어요. 찬찬히 살펴보면 제목이나 저자에 강력한 힘이 있을 경우에는 다른 디자인 요소보다 타이포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은 듯해요. 내용의 모든 컨셉이 제목에 실려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심플한 표지라 해도 디자이너의 공력이 덜 들진 않겠지요. (오히려 심플한 표지일 때 더욱 디자이너의 내공이 필요할 경우도 있겠죠.)




만화책 표지를 좋아하는데 기존의 레이아웃 딱딱 맞는 표지 디자인보다 재미있기 때문이죠. 완벽한 대칭이나 황금비율보다는 엇나간 비대칭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저란 인간이 그렇죠, 뭐.) 


어쨌든 제가 사는 책들은 대부분 책내용과 표지가 글로 치자면 '서로 호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들기 전에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수긍할 수 있는 책표지입죠. (응? 갑자기 말투가...)


결론적으로 독자로서의 저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표지보다는 조금 조약할지라도 책내용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표지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책을 만들 때는 그 부분을 잠시 망각했던 것 같아요. 미란다의 '재미있음'과 '인지도'를 드러내야한다는 생각에 발목을 잡혀서 표지의 방향이 길을 잃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표지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 책의 내용을 하나의 이미지로 느낄 수 있도록

- 책덕 출판사의 (혹시 있을지 모를) 다음 책과의 연결성

- 다 드러내기 보다는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디자인


물론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책보다 뛰어날 순 없겠지만 그냥 직접 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싸구려로 보일 지라도, 그리고 많이 힘들지라도 이번 책을 통해 모든 과정을 경험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편집자라서 독자들에게 좀 미안합니다. 독자들도 세련된 표지보다는 B급 냄새가 나도 투박한 매력이 있는 걸 좋아하길 바랄 수밖에요.) 경제적인 면도 무시할 수없지만 사실 맡기는 게 편할 겁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유실되는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두렵습니다. 네, 출판사는 많은 작업자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곳인데 제가 그 부분이 아직 부족하네요. 이번에 실패하든 어쩌든 욕심+두려움 때문에 이런 고집을 부려봅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어려운 점이 상당히 많은데요. 특히 책이 3D라는 점! 컴퓨터 화면이 아니라 질감이 있는 물체에 디자인이 씌어진다는 점(물론 요즘엔 컴퓨터에 보일 것도 동시에 생각해야 하지만요) 때문입니다. 인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느낌을 상상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이렇게 고집스러운 편집자이지만 그래도 허섭한 책을 독자에게 안겨줄 순 없기에 매일 고민하고 있답니다. 방황한 흔적들을 잠시 보여드리자면...




그리고 그동안 그려보았던 표지 방황의 역사는 다음 포스팅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