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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 릴리프 시리즈/미란다처럼

영국 계급과 미란다 그리고 정체성 규정하기




영국 시트콤 <미란다> 시즌 1이 방영된 것이 2010년. 당시 미란다의 나이는 36살이었다.

이 시트콤으로 영국 내에서 매우 큰 인기를 얻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빵~! 떴다'.)

영국 배우들이 늦은 나이에 스크린이나 TV쇼에 데뷔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닌 것 같다.

영국은 셰익스피어 같은 극본의 거장이 탄생한 나라이다 보니 '극'에 대한 접근이 남다른 듯하다.

그래서 보통 배우가 되려면 연기 학교를 수료하고 다양한 연극에 출연하면서 경력을 쌓는다고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연기 학교 정리는 이 블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알 만한 배우는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트레이닝된 배우들이다 보니 영국 배우들은 대부분 연기가 안정되어 있다는 평을 듣는다는 의견도 있다.)


미란다는 몇몇 커뮤니티에 알려진 것처럼 부모쪽 양가가 귀족 가문이라고 한다.

영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게 계급 문화라서, 그에 대해서 조금 알고 난 후부터는

영국 배우를 보면 어떤 계급일까 궁금해하게 된다. 우리나라랑 워낙 다르다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계급 문화를 파다 보면 영국의 역사에 대해서 계속 파고들게 되는 듯하다.

미란다의 집안 배경이 좀 독특한 편에 속하다 보니 이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잠시 영국의 계급 문화에 대해 얘기하자면...


'계급 문화'에 링크된 글을 쓴 권석하 씨가 옮긴 『영국인 발견』이라는 책이 있다. 케이트 폭스라는 문화인류학자가 영국 문화에 저술한 책인데, 미란다의 책(『Is It Just Me?』)을 번역하면서 영국 문화를 워낙 모르다 보니 참고하려고 샀던 책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책 내용이 좀 지루해서 아쉬웠지만.) 이 책을 읽었어도 영국이란 나라를 쉽게 간파할 순 없었다. 우리나라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영국(United Kingdom)이지만 4개의 나라(?)로 나뉘어 있다는 것, 지방마다 쓰는 영어가 조금씩(억양은 많이) 다르고 계급도 9단계 정도로 나뉜다는 것, 계급에 따라 쓰는 말이나 생활방식이 다르다는 것 등. 한정된 지역에서 섞임 없이 살아온 우리랑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많이 다르니 형성되온 역사가 달랐으리밖에 없었을 듯하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명암을 지닌 문화라서 영국의 계급 제도를 '좋다' '나쁘다'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총리 자리까지 오른 대처 총리도 상류층에겐 여전히 '잡화상 딸'이라고 여겨지니 총리 이하의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계급의 잣대가 얼마나 냉혹한가 싶지만,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돌리거나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일에 목숨을 바치는 것을 피하지 않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고 하니 그 명과 암이 참으로 확연하다. (솔직히 영국 대도시의 건물 주인이 개인이 거의 없다는 점-상속세가 엄격하고 기증이 보편적이라는 점은 무척 부럽다. 그리고 코리안위클리 글에서는 군인이 나라에 참전는 일은 당연하니 여왕의 아들들이 전쟁에 참전한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감지덕지 할 밖에... ^ ^; 물론 당연한 의무는 맞다.)


어쨌든 이 글에서는 영국의 계급 문화가 영국인들에게는 굉장히 뿌리 깊게 정체성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상류층은 왕족이나 귀족(태생적으로 군인) 이외에 보통 오래된 고위 성직자 가문 여러 대에 걸쳐 고위직을 배출한 정치인 가문, 오래된 지식인 가문 정도라고 한다.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지기 때문에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사회에 나가면서 그 계급 자체가 힘든 굴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란다의 족보, 족보는 족보일 뿐


미란다의 가문에 대해서는 애리조나 노라 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1950년대 아랍 지역에서 영국군 합참의장 및 영국 총독으로 근무했고 그 위로 올라가면

제독 및 총독이 줄줄이 나온다고 하니 확실히 상류층이다. 미란다의 인터뷰 내용 중에 "친척들이 자기가 감당도 못하는 커다란 성에 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위키백과). 물론 상류층도 각각 상중하로 나뉜다고 하니 상류층 안에도 또 계급이 있는 모양이다.



미란다가 10살쯤 됐을까? (출처 : dailymail.co.uk)


그러나 기사를 보면 미란다가 10살 때까지 미란다의 가족은 햄프샤이어의 피터스필드에서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고 나와있다. 그러다가 미란다의 아버지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함장으로 참전한다. (미란다가 10살 때) 아르헨티나가 도발을 해서 발발된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 내용을 가지고 2007년에 BBC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자세한 영어 기사

이때 미란다의 아버지, 데이빗 하트 다이크 함장이 지휘한 함선이 아르헨티나 전투기의 폭격을 받아서 침몰했다고 한다. 함선에 타고 있던 전원이 탈출하여 다른 함선에 있던 인명을 170여명 구조했다고 한다. 이 사고로 19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했다으며 데이빗 하트 다이크 함장은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링크된 데일리메일 기사를 보면 데이빗 함장은 이때 큰 충격을 받아서 25년 간 당시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BBC 다큐에서는 "전쟁이란 체스 게임 같아서 체크메이트를 하기 위해선 말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며 "자신도 그 말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서 미란다의 인터뷰도 나오는데, 당시 10살이었던 미란다는 학교를 다녀오자 집 주위를 왠 기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다가 무거운 분위기를 못 참았는지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정작 엄마가 아버지 일에 대해 말해주었을 때, 저는 '근데 팬케이크 먹어도 돼요??'라고 물었다고 해요."


전쟁에 나갔다가 아버지가 거의 죽을 뻔했으니 어린 미란다에게도 꽤 힘든 시기이지 않았을까? 어려서 잘 몰라겠지만 아버지가 얼굴에 화상도 많이 입었으니... 미란다 아버지인 데이빗 함장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물론 상류층이고 군인이기에 임무를 수행했지만 실체 없는 국가[각주:1]의 '대의'를 위해 희생당한 동료들을 생각하며 계급이라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 미란다는 (확실하진 않지만) 인터뷰나 여러 가지 태도를 통해(특히 시트콤에서 상류층이나 사교활동을 풍자하는 걸 보면) 자신의 계급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표현을 했다. (개의치 않는다기 보단 가문의 정체성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두는 표현이랄까?)


미란다 하트는 "자신의 조상이 상류층이긴 하지만 자기 자신을 상류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게 영국에서 어떤 무게감을 지닌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미란다라는 사람을 볼 때 껴야할 필터를 한결 가볍게 해준 말로 느껴진다.


* 참고 도서



영국인 발견

저자
케이트 폭스 지음
출판사
학고재 | 2010-01-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왜 영국인들은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할까?200여 년 전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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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 책은 이 책이고요.




영국인 재발견

저자
권석하 지음
출판사
안나푸르나 | 2013-10-21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10월 영국 국빈 방문 예정! 대영제국의 이름으로 20세기 세계...
가격비교


위 책을 번역한 권석하 씨가 직접 집필한 이 책도 있어요. 

번역서보다 더 잘 읽히지 않을까 싶어요.


  1. 단 하나의 뜻으로 뭉치기엔 무리가 있다는 뜻으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