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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 출판 일지

조판을 직접 할 것이냐 맡길 것이냐

아무리 무대뽀에 혼자 다 하는 무모한 출판을 한다 했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왔다. 앞으로 남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더욱 많아지겠지. 첫 번째 관문은 조판이다. 


조판?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생각 없이 쓰던 말.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조판03 (組版)
명사출판
  • 원고에 따라서 골라 뽑은 활자를 원고의 지시대로 순서, 행수, 자간, 행간, 위치 따위를 맞추어 짬. 또는 그런 일. ≒제판03(製版)「2」ㆍ판짜기.
     사무실엔 온통 일거리가 없다. 교수 설문도 조판에 넘겨 버린 터였다.≪이청준, 조율사≫
조판-되다(組版--)  [--되-/--뒈-]
동사출판
  • 원고에 따라서 골라 뽑힌 활자가 원고의 지시대로 순서, 행수, 자간, 행간, 위치 따위가 맞추어져 짜이다. ≒제판되다「2」.
조판-하다03(組版--)
동사출판
    …을
  • 원고에 따라서 골라 뽑은 활자를 원고의 지시대로 순서, 행수, 자간, 행간, 위치 따위를 맞추어 짜다. ≒제판하다「2」.
     나는 열흘 동안 같은 책을 조판했다.≪조세희,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TYPOGRAPHY SEOUL



컴퓨터의 등장은 여러 기능직의 일하는 모습을 (대부분 사무직으로) 변화시켰다. 조판 작업 역시 지금 인디자인으로 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대체 예전엔 어떻게 활자를 하나하나 껴맞춰서 책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넘어 경외심이 든다. 디지털 작업이 보편화되면서 기술적인 역량이 중요하던 조판 작업이 이제는 디자인 역량에 따라 책의 만듦새가 달라지는 형편이 되었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도 필요하겠지만 디자인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전보다 훨씬 커졌다. 폰트만 해도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0.1mm의 여백도 디자이너가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아무리 빠듯한 살림으로 책을 만든다 해도 전문적인 영역인 조판 디자인까지 직접 할 생각을 하니 왠지 아득하다. SBI에서 겨우 한 달 남짓 배운 기초 수업을 토대로 조판을 할 수 있을까? 슬금슬금 욕심이 들었다. 펴낸이 김물흠 번역 김물흠 편집 김물흠 디자인 김물흠! 이면 아 얼마나 뿌듯하겠어. 자아도취하기에는 딱이지만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인디자인에 올려나 보자 하는 생각에 시험판 인디자인에 텍스트를 부어봤다. 



여백을 상하좌우 20mm씩 주고 텍스트를 흘린 모습. 이 빡빡한 판면을 본 간재리 왈, "논문이야?" "......."


본문 서체는 주워듣기로는 sm명조가 판짜기가 잘 되어 있다고(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다. 그러나 유료이므로 일단 무료 서체인 Kopub 명조를 썼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과 다른 책을 참고하여 폰트 크기와 행간을 조정해 보았다. (참고로, 무지한 출판인에게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은 빛과 소금이다.



행간을 조절한 후 모습. 아무래도 페이지 번호를 넣으려면 아래 여백을 좀 더 줘야 할 것 같다. 페이지가 너무 많이 나올까봐 여유있게 여백을 주기가 힘들다. 




출력한 용지에 메모해 놓았던 조판 정보. 




(프린터기 토너가 점점 떨어져간다... 하아... 힘을 내, 이 친구야!)

이번에는 역시 무료폰트인 나눔명조로 바꿔봤다. Kopub체와 육안(내 눈)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눔명조가 자간이 살짝 더 여유로운 정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요즘엔 나눔폰트로 조판한 책들이 간간이 보인다. 잠깐 봤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디자이너가 보면 또 어떨지 몰라도...)


이것만 하는데도 진이 빠진다. 디자이너라면 뚝딱 해낼 작업을 일일이 알아가면서 해야 하니... 아무래도 직접 하려면 위험부담이 클 것 같다. 아직 고민중이긴 하지만 맡길 것이라면 빨리 결정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약은 약사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그러나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결정한다 해도 넘어야 할 벽은 또 있다. 요즘은 실력 있는 북디자이너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냥 화려하고 멋있는 게 아니라 책의 물성을 이해하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생각한 디자인을 하려는 디자이너들...북디자인에도 트렌드가 있어서 비슷한 스타일이 많이 눈에 띄긴 하지만 자신만의 특성을 살리는 디자이너를 볼 때면 무척 반갑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정감 있는 디자인보다는 과감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출판사 다닐 때도 약간 모험하는 편?) 하지만 개인의 취향과 별개로 코믹 에세이라는 장르와 책의 내용에 맞는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어떤 디자이너에게 맡길 것이냐! 디자이너들도 특화된 책 장르가 나름 있는 편이라서... 일단 정적이고 너무 심플한 스타일은 안 맞는 책이라 고민이다. 사실 심플한 디자인이 어울리는 책이라면 그냥 하얀 표지에 제목만 올려서 내고 싶다. (그러나~)


아무튼 오늘은 고민으로 시작하여 고민으로 끝나는 하루였다.